사랑 조각

NOVEL 2014. 9. 23. 23:59
길고양이조차 보이지 않는 흑연보다 깊은 어둠이 찾아와, 온 세상을 한 번 휩쓸고 지난간다. 카오스, 그 정연의 흐트러짐을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던 창날의 꽃잎. 장렬히 전사한 사랑과 그의 동료들. 아아,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하고 눈물을 흘리는 소녀여.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여리던 가슴의 품에 갇혀있던 모든 증오와 무질서함이 세상에 흩어지길, 그것이 바로 판도라의 상자의 잔인한 내용물이다. 모든 형제자매여, 눈이 멀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하거라.
혼란의 소용돌이 속 유일하게 맑은 눈을 떠, 엉키고 엉킨 관계로 물들어 굳어버린 동앗줄을 끊어줄 사람만을 애타게 찾는 이들만이 존재할 때. 시간같이 흐르기만 하던 사랑이 어느 순간 멈춰버릴 때. 인생은 제자리를 찬찬히 찾아가기 시작한다.
싹트는 봄의 느낌은 따뜻하다. 다만 그 안에 숨어있던 어두컴컴한 혼돈이 가끔 얼굴을 들어낼 때, 그 때 따뜻함을 압도하는 무력감을 만나버린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또 한 번 카오스가 시작되니까.
Posted by 냉콩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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