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 그 아무리 지루해 보이고 표지가 재미있지 않더라도, 또는 출판된 지 십 년이 넘었더라도, 절대로 편독해서는 안 된다. 그 지루함 속에 감춰져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책이 바로 이 책, <The Giver>이다.

사라져버린 사람의 감정과 색과 사랑,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질서함과 아픔과 고통. 인간다움이 사라져버린 체계적인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간다움의 기억을, 그리고 실수를 통한 아픔과 고통을 간직하고 있는 Giver, 그리고 그의 뒤를 따를, 마음이 열려있는 Receiver. 그들이 이루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며, 실수 따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질서 정련한 사회에서 저지른 잘못은 무엇일까? 그렇다. 고통이 없는 것. 고통이 없으면, 사람은 감정과 인간다움을 배우지 못한다. 그 빈자리를 로봇 같은 형식과 질서, 그리고 통제가 뒤따르고, 사람은 점점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에 만족하며, 당연하듯 살아간다.

사랑도, 감정도, 따뜻함도 추움도, 동물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없는 세상 에서 말이다.

 

사실 직접 매트릭스를 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사회 선생님께서 보수와 진보를 설명하기 위해 보조자료로 약간 보여주신 적은 있으시다. 빨간 약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고, 파란 약은 안전한 가상현실에서 계속 살게 해준다. 그 때, 나는 두려움이 많았고, 파란 약을 먹겠다고 선생님께 답했다. 그러나 지금은 잘 모르겠다. 두려움 전에 나를 압도하는 정의감이 생긴 것 같다. 내가 만약 Receiver로 선택이 되었다 해도 그 새로운 고통과 두려움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매트릭스가 내가 봤을 때 약과 가상현실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약했던 이유, 또한 내가 파란 약을 먹으려고 했던 이유도 진실은 있었지만 그 아픔을 덮을 만한 진통제, 즉 행복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싸워봤자 무슨 좋은 일이 생기겠는가. 오히려 매트릭스에서는 가상현실에 사랑과 행복이 존재했다.

 

<The Giver>는 완벽함과 불완전함 중에서 무엇을 택할지 묻고 있다. 완벽함에는 위험의 존재가 없지만, 그 위험을 생기게 할 만한 인간다움이 결함 된다. 하지만 불완전함은 인간다움으로 이루어져 있다. 햇빛을 보라. 햇빛은 우리에게 따뜻함과 포근함을 제공하지만, 피부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에서 완벽하지 않고, 불완전하다. 피부암에 걸릴까봐 햇빛을 차단한다? 불에 타고, 데일까봐 온기와 음식을 주는 불을 위법시킨다? 과연 그것이 올바르고 현명한 선택일까? 우리의 세계를 완벽하게 만들려는 것이? 글쎄다.

 

사람은 살아갈 때 험한 길을 가게 되어 있다. 재벌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라. 재벌은 편하게 살아왔고, 그 누구도 많이 누릴 수 없던 것들을 누리며 지배한다. 그들은 그 대신 형식적인 인성은 존재할 지 몰라도, 마음 깊숙이 누구를 진심으로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누리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작은 인정도, 사랑도, 나눔도 진실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진정하게 평범한 사람들의 사이에 낄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다. 사람은 험한 길, 또는 선택을 해야지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텔레비전에서 광고된다. 굳이 광고가 아니더라도 드라마나 영화나, 보통 주인공은 험한 인생을 살아간다. 신데렐라는 궂은일을 하며 살다가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백설공주는 평생 왕비에게 미움만 받다가 난쟁이들과 왕자를 만나며, 인어공주는 항상 땅을 동경하며 살다가 결국에 목소리를 포기하는 선택을 한 후 지상에서 왕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럼으로 우리는 완벽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굳이 완벽해야 하는 이유를 작가는 묻고 있다. 인간이 완벽한 게 오히려 불완전하지 않을까, 불완전한 것이 오히려 완벽한 인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TV와 인터넷으로 잊고 있던 책이 나를 완전히 매혹시켰다. 얕은 재미로만 보았던 팬픽과 인터넷 소설이 보면 볼수록 웃음만 짓게 한다. 이것이 시초일 수도 있을 것 같다. Community같은 사회가 될 수 있는 시발점이 말이다. 충분히 우리 사회는 Community에서 했던 신체적인 제약과 법이 아니더라도 변하고 있는 중이다. 당신의 가족과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언제였는가? 바쁜 하루를 끝나고, 당신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것이 가족간의 대화와 웃음이 아닌, 혼자서 웃음을 짓게 하는 개인적인 즐거움이 아니었는가? 만났다 헤어진 애인을, 진심으로 사랑한 게 맞는가, 아니면, 자존심과 집착이 만남의 연료였는가?

1993, 그 때는 달랐을 것이다. 이 작가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지, 창의력이 뛰어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 내 말이 맞을 것이다. 몇 년쯤이면, 우리들의 사랑이 줄어들어 찾아볼 수 없게 될까? 굳이 사람들끼리 규제한 것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없어질 따뜻한 감정들. 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무엇보다도 가장 재미있었고, 유익했고, 감동을 받았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깊숙하게 숨어있던 감정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에 Jonas는 눈으로 뒤덮인 높은 경사를 내려가며 흐르는 음악을 듣게 된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듣지 않았던 클래식을 들으며 잠에 들고 싶어졌다. 빨간 약을 먹을까, 파란 약을 먹을까 한 번 더 고민해보며 말이다.

Posted by 냉콩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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